오늘은 미국 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 하퍼 리(Harper Lee)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퍼 리는 단 한 권의 작품만으로 전 세계 독자들의 기억에 깊이 새겨진 작가입니다.
그녀의 대표작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는 출간 이후 수십 년 동안 인종차별, 정의, 도덕적 용기라는 보편적 가치를 다룬 걸작으로 손꼽히며, 미국 내 교육현장에서도 오랫동안 필독서로 지정될 만큼 영향력 있는 소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작품은 미국 남부의 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어린 소녀의 시선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편견을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소설입니다.
하지만 하퍼 리는 문학적인 명성과 상반되게 매우 조용하고 사적인 삶을 살아온 인물이었습니다.
유명세를 원치 않았고,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렸으며, '앵무새 죽이기'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추가 작품 없이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이렇듯 그녀의 삶은 대중 앞에 드러나는 것보다 오히려 그 이면에서 더 많은 궁금증과 해석을 낳았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한 권의 소설이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는지, 왜 하퍼 리는 그 이후로 거의 글을 쓰지 않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하퍼 리의 문학적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미국 남부의 복잡한 역사와 구조적 차별을 몸으로 체험하며 자랐고, 그것을 글로 풀어낼 수 있는 탁월한 통찰력과 섬세한 감수성을 갖춘 작가였습니다.
특히 법과 정의, 인간의 양심에 대한 그녀의 통찰은 당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단지 소설로서만이 아니라, 시대와 이념, 인류애에 관한 깊은 성찰이 담긴 기록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글에서는 하퍼 리가 어떤 시대를 살았고, 어떤 환경 속에서 '앵무새 죽이기'를 쓰게 되었는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그녀의 작품이 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감동을 주는지를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또한 그녀가 말년에 발표한 '파수꾼(Go Set a Watchman)'에 대해도 간략히 언급하며, 두 작품 사이의 관계와 작가로서의 진화, 그리고 논란의 배경에 대해서도 알아볼 예정입니다.
1. 하퍼 리의 삶과 '앵무새 죽이기'의 탄생 배경
하퍼 리는 1926년 4월 28일, 미국 앨라배마 주의 먼로빌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본명은 넬 하퍼 리(Nelle Harper Lee)였고, '넬(Nelle)'이라는 이름은 그녀의 어머니 이름인 '엘렌(Ellen)'을 거꾸로 쓴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에 남다른 흥미를 보였습니다.
특히 그녀가 자라난 앨라배마의 보수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분위기는 훗날 '앵무새 죽이기'의 주요 배경이 되는 ‘메이콤’이라는 가상의 마을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하퍼 리의 아버지 에이머사 콜드웰 리(Amasa Coleman Lee)는 변호사였으며, 지역 신문사의 편집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매우 정의감 있는 인물이었고, 경제 대공황 시기에도 인종차별적인 분위기 속에서 흑인을 변호한 이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은 '앵무새 죽이기'에서 주인공 ‘스카웃’의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라는 인물로 반영되었습니다.
많은 비평가들이 애티커스는 실제로 하퍼 리의 아버지를 모델로 했다고 보고 있으며, 그가 아이들에게 올곧은 도덕관과 양심을 심어주려 했던 방식은 실제 가족 사이의 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하퍼 리는 고등학교 졸업 후 헌팅던 대학을 다녔다가, 이후 앨라배마 대학교로 전학하여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곧 법률 공부보다는 글쓰기에 더 매력을 느꼈고,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문학과 저널리즘을 향한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1950년대 초반, 그녀는 뉴욕으로 이주하여 항공사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집필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유명한 작가 트루먼 커포티와도 절친한 친구 사이였으며, 커포티와의 인연은 그녀의 글쓰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커포티와 하퍼 리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으며, '앵무새 죽이기'의 인물 중 ‘딜’은 커포티를 모델로 한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생계를 유지하면서 틈틈이 집필한 소설 원고를 들고 여러 출판사를 돌았고, 드디어 1957년에 첫 원고를 제출하게 됩니다.
당시 제목은 지금의 '앵무새 죽이기'가 아니라 'Go Set a Watchman(파수꾼을 세우라)'였고, 편집자는 이 작품의 문학적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이야기를 더 정제하고 재구성할 것을 제안합니다.
하퍼 리는 이 편집자의 조언을 수용했고, 2년간의 수정을 거쳐 지금의 '앵무새 죽이기'가 완성된 것입니다.
소설은 1960년 출간과 동시에 미국 사회에 강렬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듬해인 1961년에는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그야말로 한 편의 문학작품이 가진 힘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성장소설이나 가족 이야기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당시 미국 남부 사회의 구조적인 인종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특히 주인공인 스카웃의 눈을 통해 묘사되는 사회의 모순과 편견은, 어린 시선으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며 독자들에게 뼈아픈 자각을 안깁니다.
스카웃과 그녀의 오빠 젬, 그리고 이들을 지키는 아버지 애티커스는 정의와 용기,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존중이란 무엇인지 독자에게 묻고 있습니다.
하퍼 리는 '앵무새 죽이기' 이후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별다른 문학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녀가 지나치게 높은 평가와 기대에 짓눌려 글을 쓰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단 한 편으로 자신의 할 말을 모두 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녀는 언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고, 대중 앞에 드러나는 것을 꺼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은 해마다 수백만 부가 팔릴 정도로 꾸준히 사랑받았고,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결국 2015년, 하퍼 리가 젊은 시절 썼던 원고였던 'Go Set a Watchman'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또 한 번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앵무새 죽이기'의 후속작이자 초안 성격의 글로, 작품 속 인물들의 가치관 변화가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애티커스가 인종분리주의자처럼 묘사된 부분은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하퍼 리가 이 책의 출간에 얼마나 동의했는지를 두고도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그 논란조차도 그녀의 문학적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퍼 리는 한 작가의 삶이 단 한 권의 책으로도 세상에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길 수 있는지를 증명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소리 없이 글을 썼고, 작품을 통해 세상에 목소리를 냈으며, 침묵 속에서도 문학의 위엄을 지켜냈습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그녀의 사상과 감성이 응축된 결정체였고,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도화선이 되었던 것입니다.
2. '앵무새 죽이기'가 전하는 메시지와 시대적 의미
'앵무새 죽이기'는 미국 문학사에서 단순히 유명한 소설이 아니라, 사회적 성찰과 도덕적 메시지를 담은 상징적인 작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소설은 1930년대 미국 남부의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작가 하퍼 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앨라배마 주의 분위기를 기반으로 창조된 가상의 공간, ‘메이콤’에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한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는 사건이 놓여 있고, 주인공인 스카웃이라는 어린 소녀의 시선을 통해 당시 사회가 지닌 불합리와 편견을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소설 속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바로 도덕적 양심과 인간 존엄성의 회복입니다.
스카웃의 아버지인 애티커스 핀치는 흑인 피고인 톰 로빈슨의 변호를 맡으며 사회 전체로부터 외면받는 길을 택합니다.
그는 가족을 향한 비난, 이웃들의 냉대, 심지어는 위협까지 감수하면서도 꿋꿋하게 정의를 향해 나아갑니다.
애티커스의 행동은 단순히 법률적인 의무를 넘어선 것으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적 신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본보기입니다.
그는 스카웃과 젬에게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봐야 한다”고 말하며, 편견 없이 사람을 보는 법을 가르칩니다.
이 말은 소설 전반을 아우르는 핵심이자, 인간 이해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설은 단순히 이상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퍼 리는 현실이 얼마나 이상과 괴리되어 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톰 로빈슨은 아무리 논리적이고 명확한 무죄 증거가 존재해도, 백인 여성을 상대로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결국 안타까운 결말을 맞습니다.
이 장면은 당시 미국 남부 사회의 깊고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법의 판단마저 왜곡할 수 있다는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독자들은 이 부조리를 통해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고, 나아가 ‘정의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가치를 따라 살아가야 하는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또한 '앵무새 죽이기'는 단순히 인종 문제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성장, 용기, 양심, 관용, 교육 등 다양한 주제를 동시에 아우릅니다.
스카웃이 어린아이로서 처음 겪는 세상은 복잡하고 혼란스럽습니다.
그녀는 사랑과 차별, 정의와 불의, 겉으로 보이는 선함과 내면의 위선 등을 목격하면서 점차 성장하게 됩니다.
이는 곧 독자들에게도 자신만의 내면의 ‘성장기’를 겪게 하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하퍼 리는 독자들에게 교훈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스카웃이 보고 듣고 느끼는 과정을 조심스럽게 따라가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애티커스의 변호는 법정 바깥에서도 중요한 함의를 가집니다.
그는 단순히 법정에서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삶을 가르치고, 이웃들에게 양심을 설득하며, 독자에게 인간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묻습니다.
특히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죄다’라는 말은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인 문장입니다.
앵무새는 아무 잘못 없이 노래만 부르는 존재이기에, 그런 존재를 해치는 것은 불필요하고 잔인한 행위라는 뜻입니다.
이 상징은 곧 죄 없는 사람을 희생시키는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당시 1960년대 미국 사회는 마틴 루서 킹 주니어를 중심으로 한 민권운동이 점차 활기를 띠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발표된 '앵무새 죽이기'는 그러한 시대정신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 볼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이미 흑인 해방이 이루어졌지만, 실질적인 평등은 아직 멀기만 했던 당시 사회에서, 하퍼 리의 목소리는 매우 절실하고 필요한 외침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으로, 하나의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자, 사회를 향한 윤리적 경고음과도 같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소설은 세계 곳곳에서 읽히고 있으며,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자주 포함될 만큼 교육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 이유는 변하지 않는 진실 때문입니다. 인간은 여전히 편견을 갖고 있으며, 사회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고, 약한 존재들은 언제나 더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이 사실을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편견을 마주하고 있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나 자신은 과연 애티커스처럼 양심의 목소리에 충실할 수 있는가.
결국 이 작품이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읽히는 이유는 바로 그 보편성과 진정성에 있습니다.
그것은 특정 시대의 고발을 넘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성찰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퍼 리는 단 한 편의 소설로 세상을 바꾸진 못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고 생각을 흔들었으며, 무엇보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기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앵무새 죽이기』는 하나의 문학작품을 넘어,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등불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오늘날 하퍼 리를 읽는다는 것의 가치
하퍼 리가 '앵무새 죽이기'를 세상에 내놓은 지 어느덧 6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시대는 변했고, 미국 사회도 과거보다는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퍼 리의 문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단지 ‘문학사 속 명작’으로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다시 읽어야 할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녀의 글은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담고 있으며, 어떤 시대든 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매일같이 수많은 정보와 사건 속에 살아가며, 옳고 그름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사회를 경험합니다.
익명성과 무분별한 여론, 편향된 시각, 그리고 빠르게 소비되는 감정들이 뒤섞이는 이 시대에, 하퍼 리의 문장은 마치 한 줄기 맑은 공기처럼 다가옵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독자에게 말합니다.
무엇이 정의이고, 누가 약자이며,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그 질문은 단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중요합니다.
특히 사회가 점점 더 분열되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져 가는 현실에서는 그녀의 목소리가 더욱 절실하게 들려옵니다.
오늘날 하퍼 리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고전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도덕성과 윤리 의식을 재점검하는 시간이 됩니다.
애티커스 핀치라는 인물은 여전히 이상적인 인물로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지만, 동시에 그는 우리가 따라가기엔 너무나 높은 기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퍼 리는 완벽한 인간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진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올바름을 선택하려는 의지, 그 자체에 가치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문학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옳다고 믿고 있으며, 그 신념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또한 '앵무새 죽이기'는 교육의 영역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지 국어 시간의 고전으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도덕과 사회, 인권 교육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어린 독자들은 스카웃이라는 인물을 통해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고, 어른 독자들은 애티커스를 통해 스스로의 책임과 양심을 돌아보게 됩니다.
한 작품이 이렇게 다양한 세대에 동시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닙니다.
하퍼 리는 글을 통해 교과서보다 더 강력한 도덕 교육을 만들어낸 셈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하퍼 리의 작품이 인류 보편의 가치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종차별이라는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본질은 ‘차별’과 ‘편견’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문제에 대한 질문입니다.
피부색, 성별, 국적, 종교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는 현실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다문화 가정, 장애인, 성소수자, 고령층 등 다양한 소수자들이 겪는 차별은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될 문제입니다.
이때 '앵무새 죽이기' 는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정의를 외면한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하퍼 리의 글은 매우 단순하고 쉽게 읽히는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녀는 화려한 문장이나 극적인 구성을 추구하지 않았고, 오히려 담담하고 절제된 표현을 통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 덕분에 독자는 과장되지 않은 진실과 마주하게 되고, 오히려 더 깊이 있는 감동을 받습니다.
그녀는 독자의 지성과 양심을 믿었기에, 어떤 메시지도 강요하지 않았고, 독자 스스로 느끼고 판단할 수 있도록 글을 열어두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의 힘이며, 오늘날 하퍼 리를 읽는 진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점점 더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정답을 빨리 찾고, 감정을 빨리 소비하며, 깊은 성찰보다 즉각적인 반응에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퍼 리의 문학은 그런 흐름에 질문을 던집니다.
“잠시 멈추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과연 선한 사람인가’와 같은 질문은 쉬운 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의 문장을 되새기며, 그 질문에 대해 오늘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날 하퍼 리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인간을 다시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라고 했고, 편견 없이 사람을 보라고 했으며, 양심을 따르되 조용히 실천하라고 말했습니다. 이 모든 말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말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완전하지 않지만,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더 나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하며, 그 여정의 동반자로서 하퍼 리는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합니다.
하퍼 리는 단 한 권의 소설로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긴 작가입니다.
그녀는 시끄럽게 목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단단하고 꾸준한 문장으로 시대를 울렸고, 지금도 울리고 있습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단순한 소설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기준이자, 우리 내면의 양심을 깨우는 울림이기도 합니다.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특정 시대의 미국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진실로 다가옵니다.
그녀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았고, 인물들은 특별하지 않았으며, 사건은 극단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더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고,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를 일상의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스카웃과 젬의 성장을 따라가며 우리는 어린 시절의 우리 자신을 떠올렸고, 애티커스의 말과 행동을 보며, 우리는 어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반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퍼 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지금 정의를 따르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보려 하고 있는가? 세상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기술은 점점 진보하고, 인간의 삶은 더 편리해지고 있으며, 인권과 평등에 대한 인식도 확장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우리는 여전히 차별과 편견, 혐오와 무관심이라는 그림자를 마주하게 됩니다.
하퍼 리의 문학이 지금도 필요한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 있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들었고,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말하라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임을 증명했습니다.
우리는 '앵무새 죽이기'를 읽으며 단지 한 가족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 사회와 개인 사이, 양심과 이익 사이의 끝없는 충돌을 경험하는 것이며, 그 안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을 다시 바라보는 일입니다.
오늘날 하퍼 리를 읽는다는 것은, 그저 과거의 명작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얻는 것이며,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하퍼 리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구호를 외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하지만 단호하게 인간에 대한 믿음과 존엄을 이야기했고, 그것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도 그녀의 책을 펼치며 다시 질문합니다.
“나는 지금, 올바른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이 계속되는 한, 하퍼 리는 영원히 잊히지 않을 작가로 남을 것입니다.